해마다 돌아오는 봄, 고추와 가지 모종 등 텃밭지기라면 으레 심어야 할 작물들을 심고 나면 어김없이 뒤통수 치고 달아나는 녀석들이 등장한다.
고 녀석 참.
올 해만 해도 두 번째다. 처음은 무방비 상태로 호되게 당했다. 호미로 풀 긁어대다 허리 한 번 펴 볼까 하고 일어나려는데 순식간에 뒤통수를 치고 갔다. 두 번째는 경계태세로 예의 주시했지만 또 정수리 근처를 얻어맞았다. 치사하게 두 대도 아니고 꼭 크게 한 대 치고 달아난다. 텃밭 맞은 편 붉은 벽돌집 옥상으로 날아가 자긴 날개가 있다고 으스대는 것인지...... 하긴 주말 농장 텃밭식구 중 재빠른 삼색 길고양이 나비도 당하는데 100m달리기 18초인 내가 피할 재간이 있겠나 싶었다.
이름이 물까치란다. 물가를 좋아해서 물까치인가 해 초록창에 검색해 본다. 물색의 날개를 가진 까치라는데 정말이지 세상 예쁜 색을 몸 전체에 휘두르고 있다. 희고 까만색만 떠오르는 보통의 까치와는 다르게 이 애들은 하늘색과 5월의 라일락 빛깔을 고루 섞어 파스텔 가루를 문지른 듯한 연보라색 꽁지깃이 무척 아름답다. 언뜻 연미복을 떠올리게 하는 새다. 우아한 외모와는 다르게 자기 무리 외 존재에게 하는 행동은 훅을 잘 날리는 권투선수 같다.
귀가 따갑다. 자기 욕하는 걸 눈치 챘다보다. 사춘기 변성기 걸린 사내아이 마냥 걸걸대고 날카로운 쇳소리로 계속 지껄인다. 한 대 친 걸로는 부족한 게다. 어서 자신들의 시야에서 내가 없어져야 조용해 질 것이다. 외모를 보고 어찌 저런 소리를 내는 새라 믿을 것인가. 판다 덩치와 목소리가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것처럼 진짜 ‘확’ 깬다.
고 녀석 참.
내가 마음이 넓어 자기네들 둥지 주변은 얼씬도 하지 않으려 무지 신경 쓰고 다니는 걸 알아줬음 하는 건 내 욕심 이었나보다. 물까치와 나의 소통은 불협화음. 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했다. 내 뒤통수가 멍 해 있는 사이 여수 할매가 맷돌호박씨를 들고 남는 땅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신다. 가을이면 자신은 호박 하나도 따지 못했다 푸념을 늘어놓으실 게 뻔한데 해마다 여기저기 심기를 반복하시는 걸 보면 집착일까 욕심일까 싶다가도 그러려니 여긴다. 어째 불안하다 싶은 것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할매 뒤통수가 남아 날 리 없다. 어디서 지켜보고 있다 날아왔는지 물까치가 크게 한 때 빗겨치기 하고 도망갔다. 화난 여수 할매, 욕을 두어마디 뱉으시더니 끝엔 ‘아버지 하나님’을 찾으신다.
고 녀석 참.
그 뒤 물까치의 공격 대상은 경로당 총무님부터 산책 나온 말티즈 강아지 바울이까지 텃밭 주위에 오가는 이들 중 한 대 안 맞은 이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줄줄이 소시지도 아니고 맞고 기분 좋아할 이 누가 있겠나 싶었다. 지 새끼가 중하면 사람 머리도 소중한 것을 알아야 할 텐데. 나도 어미 입장이니 물까치 마음 헤아려 새끼들 이소 때까지 둥지 근처는 발걸음 안하기로 아로 새겼다.
이른 장마가 시작되고 백오이 꽃이 피고지고 오이가 달릴 때 쯤, 고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퇴장하고 없다. 물까치야, 내년에는 부디 멀리 떨어진 곳에 둥지 틀어다오.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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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고 녀석 참
2024-02-21
고 녀석 참
달래
해마다 돌아오는 봄, 고추와 가지 모종 등 텃밭지기라면 으레 심어야 할 작물들을 심고 나면 어김없이 뒤통수 치고 달아나는 녀석들이 등장한다.
고 녀석 참.
올 해만 해도 두 번째다. 처음은 무방비 상태로 호되게 당했다. 호미로 풀 긁어대다 허리 한 번 펴 볼까 하고 일어나려는데 순식간에 뒤통수를 치고 갔다. 두 번째는 경계태세로 예의 주시했지만 또 정수리 근처를 얻어맞았다. 치사하게 두 대도 아니고 꼭 크게 한 대 치고 달아난다. 텃밭 맞은 편 붉은 벽돌집 옥상으로 날아가 자긴 날개가 있다고 으스대는 것인지...... 하긴 주말 농장 텃밭식구 중 재빠른 삼색 길고양이 나비도 당하는데 100m달리기 18초인 내가 피할 재간이 있겠나 싶었다.
이름이 물까치란다. 물가를 좋아해서 물까치인가 해 초록창에 검색해 본다. 물색의 날개를 가진 까치라는데 정말이지 세상 예쁜 색을 몸 전체에 휘두르고 있다. 희고 까만색만 떠오르는 보통의 까치와는 다르게 이 애들은 하늘색과 5월의 라일락 빛깔을 고루 섞어 파스텔 가루를 문지른 듯한 연보라색 꽁지깃이 무척 아름답다. 언뜻 연미복을 떠올리게 하는 새다. 우아한 외모와는 다르게 자기 무리 외 존재에게 하는 행동은 훅을 잘 날리는 권투선수 같다.
귀가 따갑다. 자기 욕하는 걸 눈치 챘다보다. 사춘기 변성기 걸린 사내아이 마냥 걸걸대고 날카로운 쇳소리로 계속 지껄인다. 한 대 친 걸로는 부족한 게다. 어서 자신들의 시야에서 내가 없어져야 조용해 질 것이다. 외모를 보고 어찌 저런 소리를 내는 새라 믿을 것인가. 판다 덩치와 목소리가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것처럼 진짜 ‘확’ 깬다.
고 녀석 참.
내가 마음이 넓어 자기네들 둥지 주변은 얼씬도 하지 않으려 무지 신경 쓰고 다니는 걸 알아줬음 하는 건 내 욕심 이었나보다. 물까치와 나의 소통은 불협화음. 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했다. 내 뒤통수가 멍 해 있는 사이 여수 할매가 맷돌호박씨를 들고 남는 땅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신다. 가을이면 자신은 호박 하나도 따지 못했다 푸념을 늘어놓으실 게 뻔한데 해마다 여기저기 심기를 반복하시는 걸 보면 집착일까 욕심일까 싶다가도 그러려니 여긴다. 어째 불안하다 싶은 것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할매 뒤통수가 남아 날 리 없다. 어디서 지켜보고 있다 날아왔는지 물까치가 크게 한 때 빗겨치기 하고 도망갔다. 화난 여수 할매, 욕을 두어마디 뱉으시더니 끝엔 ‘아버지 하나님’을 찾으신다.
고 녀석 참.
그 뒤 물까치의 공격 대상은 경로당 총무님부터 산책 나온 말티즈 강아지 바울이까지 텃밭 주위에 오가는 이들 중 한 대 안 맞은 이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줄줄이 소시지도 아니고 맞고 기분 좋아할 이 누가 있겠나 싶었다. 지 새끼가 중하면 사람 머리도 소중한 것을 알아야 할 텐데. 나도 어미 입장이니 물까치 마음 헤아려 새끼들 이소 때까지 둥지 근처는 발걸음 안하기로 아로 새겼다.
이른 장마가 시작되고 백오이 꽃이 피고지고 오이가 달릴 때 쯤, 고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퇴장하고 없다. 물까치야, 내년에는 부디 멀리 떨어진 곳에 둥지 틀어다오.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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