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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형무소 옆 도서관

2024-02-05

아이가 어릴 때 많은 시간을 보냈던 작은 도서관이 있다. 서울 도심 인근에 이런 멋진 장소가 숨어 있을까 싶었던 그런 곳이다. 이곳은 지금은 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대문형무소가 있는 독립공원의 바로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주말이면 공원은 나들이 인파로 북적였던 반면 뒤로 살짝만 돌아가면 나무숲에 둘러싸인 호젓한 공간이기도 했다.

 

형무소를 둘러싼 붉은색 담장 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도서관에 이르곤 했다. 도서관의 붉은 외벽은 형무소의 높은 붉은 담장과도 썩 잘 어우러졌다. 도서관의 한쪽으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펼쳐져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거닐 수 있었다. 이제 막 유모차 밖을 벗어나 뛰어다니던 아이는 혼자서도 호기롭게 앞장서 걷곤 했다.

 

이 작은 도서관의 내부는 방문객들에게 친절과 따스함을 베풀었다. 1층부터 휠체어로도 편히 다닐 수 있는 경사로가 이어져 아이는 계단과 경사로를 번갈아 가며 모자열람실에 이르렀다. 한 층씩 오를 때마다 커다란 통창 너머로 다른 모습을 선사했던 공원의 풍경은 이 도서관에 오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물론 지하 카페에서 아이와 함께 한 입씩 베어 물던 쿠키의 맛도 잊을 수 없다.

 

이진아기념도서관. 이 도서관은 미국 유학 중 사고로 숨진 이진아 학생의 부모가 사재를 기증해 설립한 도서관이다. 책을 좋아하던 딸을 기리기 위해 딸의 생일날 개관했다고 한다. 공원 한켠의 작은 도서관인 줄 알고 갔다가 마주하게 된 뜻밖의 이야기에 한동안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아이는 모자열람실 안을 들어서며 익숙하게 신발을 벗고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하나 골라왔다. 때로는 한눈에 재미난 책을 찾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한참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올 때면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기대감에 눈이 반짝였다. 찾아온 책을 나에게 건네더니 이젠 무릎 위에 익숙하게 앉아 책을 읽어 주길 기다린다.

 

그 어느 부모도 아이와 이런 달콤한 시간을 보냈겠지. 이 도서관은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졌겠지. 어느 부모와 아이와의 시간으로 만들어진 그 도서관에서 나는 슬프고 가슴이 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