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이라는 단어는 오묘하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거나 누군가와 헤어지게 됨으로써 나에게 있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방비상태의 맨살로 만나게 되는 또 다른 현실의 시작이기도 하다. 지난, 12월 10일 대학로에 위치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에서는 설치미술가 안규철을 만나보았다.
그는 상실이 있기에 예술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의 상실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부재는 그에 대한 기억들을 불러일으켜서 시간이 조각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파편들은 현재를 더욱 실감케 하고, 남은 자의 시간은 누군가와 종결된 미래의 시간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품게 한다.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은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2015 안규철-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2015년 9월 15일~2016년 2월 14일)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집합된 시간들
“태초에 언어가 있었다. 아마 그 언어는 물음이었을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안규철의 작품은 관객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건넨다. 전시장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정지된 시간이 아닌 연속성 안에서 성장하고 진화한다. 매일 자라나는 식물과 금붕어 그리고 관객이 직접 쓴 단어들로 이뤄진 벽, 필사하는 관객의 뒷모습 등은 전시의 대상이 생명체라는 데에서 친밀감을 더한다. 뿐만 아니라, 관객이 직접 작품 내부로 들어가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고독함, 성찰을 경험하도록 한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틀(frame)을 끊임없이 해체시키고 넘나들면서 작가와 작품과 관객이 하나의 질문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각자의 대답은 작품에 반영되어 함께 전시의 일부를 이룬다.
약 5개월의 전시기간동안 집합된 각기 다양한 시간들은 제각각 다른 조각의 시간일지라도 그 틀 안에서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만들어 낸다. 때문에 상실이라는 키워드가 그의 작품을 관통하면서도 작가와 작품, 관객이 수평적 관계에서 공유한다는 지점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겨난 부재와 잃어버린 것, 놓친 것을 통한 사랑의 감각을 다시금 일으키는 것이다. 파편화된 시간이 모여 상실은 보이지 않는 사랑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관계 사이에서는 70일 동안 한 음씩 사라져가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나머지 70일간 그 음들이 하나씩 회복되는 곡으로, 마치 시간의 밀물과 썰물처럼 집합된 시간들이 이야기의 공백들을 채우고 있다.
여덟 개의 작품들: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안규철의 여덟 점의 작품이 전시중이다. <아홉 마리 금붕어>(2015)는 9개의 동심원으로 구획된 각자의 공간 속에서 헤엄치는 금붕어들을 통해 무심한 아름다움과 절대적 고독이 교차하는 역설적 풍경을, <피아니스트와 조율사>(2015)는 슈베르트 즉흥곡 Opus 90, 1번과 3번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연주되지만 건반의 음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엄습해오는 침묵과 시간의 해체 그리고 이것이 다시 회복되어가는 시간을 공유한다. <1,000명의 책>(2015)은 사전에 웹사이트를 통해 일정을 예약한 1000명이 1시간씩 필경사의 방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문학작품들을 필사한다. 글 쓰는 사람의 손에 초점이 맞춰져 클로즈업 된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실시간 영상과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필경사의 뒷모습은 이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식물의 시간Ⅱ>(2015)는 공중으로 들어 올려진 15개의 화분이 모빌을 이룬다. 서로의 무게와 위치에 의해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식물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움직임 속에 있는데 하나는 정해진 높이에서 궤도를 회전하는 수평적인 움직임, 다른 하나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느린 성장을 계속하는 수직적 움직임으로 서로 다른 시간들이 평형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내는 접점이 아슬아슬함을 자아내, 보는 이로 하여금 집중을 더하게 한다.
<64개의 벽>(2015)은 검푸른 벨벳 커튼으로 구획된 64개의 방으로 관객이 커텐을 젖힐 때마다 마주치는 칠흑의 공간은 무한대로 열려 방향감각을 상실시키도록 하며 들어갈수록 주변의 소음 또한 차단되어 심해에 홀로 있는 듯 느껴진다. <기억의 벽>(2015) 앞에 서면 8,600개의 못에 걸린 카드에 적힌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들, 부재하는 이름들이 적혀있다. 기도의 벽에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사회상을 비춰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수많은 카드가 걸린 벽 앞에서 커다란 상실감이 몰려오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희망을 바라볼 수도 있다.
<사물의 뒷모습>(2015)은 7개의 연작 영상작업으로 일상의 사물인 모자, 손수건, 공, 자전거, 멜로디언 등을 이용하여 반복, 사라짐, 파편화를 통해 일상과 세상의 논리와 질서로부터 이탈시킨다. <침묵의 방>(2015)은 철근과 백시멘트로 만들어진 39톤의 규모가 크고 둥근 공 모양의 텅 빈 공간이 전시의 마지막 장면을 이룬다. 관객은 구조 안으로 들어가면 구球로 인해 작은 소리 하나도 반사되어 그 소리를 확대하여 들을 수 있다. 목구멍으로 침을 넘기는 미세한 소리까지도 반사시키는 구조물 안에서 선뜻 말을 내뱉는다는 것조차 힘들다. 작가는 왜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말과 이미지, 소리, 사물들이 사라진 공허한 방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관객들로부터 생겨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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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_인문콘서트 오늘, 설치미술가 안규철
질문_작가는 관객이 작품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많은 기억들을 불러일으키도록 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대답_예전에 작가는 생산자, 감상자는 소비자라고 생각하여 작가는 소비자의 안에 있는 것을 살려서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것이 자칫하면 좋은 것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치는 입장이 될 수도 있어 소통이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현재는 ‘관객에게 여지를 주고 각자 발견하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관객이 작품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열어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감상자가 의미를 조립해낼 수 있도록 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해 내는 것을 소통으로 보고 작업하고 있다.
질문_이미지와 텍스트 간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작업에서 이를 넘나든다.
대답_미대 졸업 후 미술 잡지사에서 7년간 기자로 활동 했었다. 그 일은 이미지를 텍스트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왜 글과 그림은 서로 적대적이어야 하나. 이 둘을 같이 사용하면 안 되나? 라는 질문 갖게 됐다. 그러면서 <그 남자의 가방>이라는 이야기 그림을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이 둘을 같이 사용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질문_‘잃어버림, 사라짐’에 대한 키워드가 돋보인다. 본인에게 기억은 무엇인가?
대답_상실에 대한 느낌이 나에게 일찍 자리 잡힌 것 같다. 어렸을 적 지방으로부터 서울 친척집에 유학하면서 갑작스레 사라진 익숙함에 대한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까 생각했었다. 인간의 꿈, 열정, 기억은 매일 우리로부터 떠나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예술은 운명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우리 앞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면 예술 또한 존재의 기반위에서 가시적인 외관에 치우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상실은 예술작업의 기원이기도 하다.
양은혜는 경기도 파주에서 살고 컴퓨터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작업한다. 무용 월간지 기자 활동을 하며 무용 대본을 쓰고 있다. 과학과 예술,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글을 쓰길 원하며 이를 무대화 시키는 데에 관심이 있다. 태초의 인간 아담을 만나보고 싶다. 사회적으로 유행하는 인문학 흐름에 직접 참여하고자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이 기회를 통해 다양한 사람과 글을 만나고 쓸 수 있길 바란다. snowtanz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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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예술콘서트 오늘 - 설치미술가 안규철
상실, 그 아름다운 언어에 대하여
인문쟁이 양은혜
2016-02-18
상실 그리고 사랑
상실이라는 단어는 오묘하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거나 누군가와 헤어지게 됨으로써 나에게 있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방비상태의 맨살로 만나게 되는 또 다른 현실의 시작이기도 하다. 지난, 12월 10일 대학로에 위치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에서는 설치미술가 안규철을 만나보았다.
그는 상실이 있기에 예술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의 상실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부재는 그에 대한 기억들을 불러일으켜서 시간이 조각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파편들은 현재를 더욱 실감케 하고, 남은 자의 시간은 누군가와 종결된 미래의 시간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품게 한다.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은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2015 안규철-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2015년 9월 15일~2016년 2월 14일)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집합된 시간들
“태초에 언어가 있었다. 아마 그 언어는 물음이었을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안규철의 작품은 관객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건넨다. 전시장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정지된 시간이 아닌 연속성 안에서 성장하고 진화한다. 매일 자라나는 식물과 금붕어 그리고 관객이 직접 쓴 단어들로 이뤄진 벽, 필사하는 관객의 뒷모습 등은 전시의 대상이 생명체라는 데에서 친밀감을 더한다. 뿐만 아니라, 관객이 직접 작품 내부로 들어가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고독함, 성찰을 경험하도록 한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틀(frame)을 끊임없이 해체시키고 넘나들면서 작가와 작품과 관객이 하나의 질문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각자의 대답은 작품에 반영되어 함께 전시의 일부를 이룬다.
약 5개월의 전시기간동안 집합된 각기 다양한 시간들은 제각각 다른 조각의 시간일지라도 그 틀 안에서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만들어 낸다. 때문에 상실이라는 키워드가 그의 작품을 관통하면서도 작가와 작품, 관객이 수평적 관계에서 공유한다는 지점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겨난 부재와 잃어버린 것, 놓친 것을 통한 사랑의 감각을 다시금 일으키는 것이다. 파편화된 시간이 모여 상실은 보이지 않는 사랑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관계 사이에서는 70일 동안 한 음씩 사라져가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나머지 70일간 그 음들이 하나씩 회복되는 곡으로, 마치 시간의 밀물과 썰물처럼 집합된 시간들이 이야기의 공백들을 채우고 있다.
여덟 개의 작품들: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안규철의 여덟 점의 작품이 전시중이다. <아홉 마리 금붕어>(2015)는 9개의 동심원으로 구획된 각자의 공간 속에서 헤엄치는 금붕어들을 통해 무심한 아름다움과 절대적 고독이 교차하는 역설적 풍경을, <피아니스트와 조율사>(2015)는 슈베르트 즉흥곡 Opus 90, 1번과 3번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연주되지만 건반의 음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엄습해오는 침묵과 시간의 해체 그리고 이것이 다시 회복되어가는 시간을 공유한다. <1,000명의 책>(2015)은 사전에 웹사이트를 통해 일정을 예약한 1000명이 1시간씩 필경사의 방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문학작품들을 필사한다. 글 쓰는 사람의 손에 초점이 맞춰져 클로즈업 된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실시간 영상과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필경사의 뒷모습은 이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식물의 시간Ⅱ>(2015)는 공중으로 들어 올려진 15개의 화분이 모빌을 이룬다. 서로의 무게와 위치에 의해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식물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움직임 속에 있는데 하나는 정해진 높이에서 궤도를 회전하는 수평적인 움직임, 다른 하나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느린 성장을 계속하는 수직적 움직임으로 서로 다른 시간들이 평형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내는 접점이 아슬아슬함을 자아내, 보는 이로 하여금 집중을 더하게 한다.
<64개의 벽>(2015)은 검푸른 벨벳 커튼으로 구획된 64개의 방으로 관객이 커텐을 젖힐 때마다 마주치는 칠흑의 공간은 무한대로 열려 방향감각을 상실시키도록 하며 들어갈수록 주변의 소음 또한 차단되어 심해에 홀로 있는 듯 느껴진다. <기억의 벽>(2015) 앞에 서면 8,600개의 못에 걸린 카드에 적힌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들, 부재하는 이름들이 적혀있다. 기도의 벽에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사회상을 비춰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수많은 카드가 걸린 벽 앞에서 커다란 상실감이 몰려오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희망을 바라볼 수도 있다.
<사물의 뒷모습>(2015)은 7개의 연작 영상작업으로 일상의 사물인 모자, 손수건, 공, 자전거, 멜로디언 등을 이용하여 반복, 사라짐, 파편화를 통해 일상과 세상의 논리와 질서로부터 이탈시킨다. <침묵의 방>(2015)은 철근과 백시멘트로 만들어진 39톤의 규모가 크고 둥근 공 모양의 텅 빈 공간이 전시의 마지막 장면을 이룬다. 관객은 구조 안으로 들어가면 구球로 인해 작은 소리 하나도 반사되어 그 소리를 확대하여 들을 수 있다. 목구멍으로 침을 넘기는 미세한 소리까지도 반사시키는 구조물 안에서 선뜻 말을 내뱉는다는 것조차 힘들다. 작가는 왜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말과 이미지, 소리, 사물들이 사라진 공허한 방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관객들로부터 생겨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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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_인문콘서트 오늘, 설치미술가 안규철
질문_작가는 관객이 작품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많은 기억들을 불러일으키도록 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대답_예전에 작가는 생산자, 감상자는 소비자라고 생각하여 작가는 소비자의 안에 있는 것을 살려서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것이 자칫하면 좋은 것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치는 입장이 될 수도 있어 소통이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현재는 ‘관객에게 여지를 주고 각자 발견하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관객이 작품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열어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감상자가 의미를 조립해낼 수 있도록 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해 내는 것을 소통으로 보고 작업하고 있다.
질문_이미지와 텍스트 간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작업에서 이를 넘나든다.
대답_미대 졸업 후 미술 잡지사에서 7년간 기자로 활동 했었다. 그 일은 이미지를 텍스트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왜 글과 그림은 서로 적대적이어야 하나. 이 둘을 같이 사용하면 안 되나? 라는 질문 갖게 됐다. 그러면서 <그 남자의 가방>이라는 이야기 그림을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이 둘을 같이 사용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질문_‘잃어버림, 사라짐’에 대한 키워드가 돋보인다. 본인에게 기억은 무엇인가?
대답_상실에 대한 느낌이 나에게 일찍 자리 잡힌 것 같다. 어렸을 적 지방으로부터 서울 친척집에 유학하면서 갑작스레 사라진 익숙함에 대한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까 생각했었다. 인간의 꿈, 열정, 기억은 매일 우리로부터 떠나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예술은 운명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우리 앞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면 예술 또한 존재의 기반위에서 가시적인 외관에 치우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상실은 예술작업의 기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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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예술콘서트오늘_안규철 편 자세히보기] 사물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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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1기]
양은혜는 경기도 파주에서 살고 컴퓨터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작업한다. 무용 월간지 기자 활동을 하며 무용 대본을 쓰고 있다. 과학과 예술,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글을 쓰길 원하며 이를 무대화 시키는 데에 관심이 있다. 태초의 인간 아담을 만나보고 싶다. 사회적으로 유행하는 인문학 흐름에 직접 참여하고자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이 기회를 통해 다양한 사람과 글을 만나고 쓸 수 있길 바란다.snowtanz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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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인문예술콘서트 오늘 - 설치미술가 안규철'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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