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영화를 통해 다시 조명되는 인물이 김오랑이다. 그는 12.12 사태에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지키다 사망했다. 처음에는 순직으로 됐다가 다시 전사로 바뀌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최세창 등은 참 군인의 길을 걷지 않았다. 정병주도 박정희의 쿠데타에 동의했다가 탈퇴했다. 군정을 하는 것은 군인정신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오랑은 고지식하다는 말도 있지만 자기의 상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박정희를 지키지 못한 차지철과 정병주를 지킨 김오랑은 대조적이다. 만일 박정희 밑에 김오랑이 있었다면 그를 지켰을 것이다. 정치군인들은 하나회를 중심으로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일신상의 이익을 위해 하극상을 저질렀다. 그후 출세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참군인 정병주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묘비는 백비로 남아있다. 장태완은 그의 아들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아내는 남편이 죽은 후 10층 아파트에서 투신한다. 김오랑의 부인 백영옥도 추락사한다.
김오랑의 흉상은 시민의 성금으로 김해의 초등학교에 건립돼 있다. 육사와 특전사에 흉상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 책은 유승민 의원이 추천사를 썼다. 저자는 ROTC 특전사로 김오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김오랑 추모사업회를 하며 이 책을 쓰게 된다.
더불어 12.12 사태에 전사한 정선엽 병장과 반란군 군인이지만 전사한 박윤관 상병도 명령에 따르다가 죽었기에 함께 기억해야 한다. 육사에는 강재구소령과 심일 소령이 동상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쿠데타 세력에 맞서 싸운 참군인 김오랑 동상을 세운다는 것은 참군인으로서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35세 김오랑 소령의 죽음이 그랬습니다. 운명의 그날 밤 그는 살고자 했더라면 살 수 있었습니다. 반란군에게 투항하고 협조했더라면 살아서 별도 달고 출세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력을 잃어가는 아내 백영옥의 눈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 오순도순 행복하게 천수를 누렸을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러나 김오랑은 죽음을 택했습니다. 젊은 죽음은 우리 가슴을 더 아프게 합니다. 군복을 입은 김오랑 중령의 어깨와 모자에 ‘역사의 하늘에 뜬 별’을 달아 드리고 싶습니다.
특전사령과 정병주가 반란군에게 가담한 직속 부하들의 손에 비참하게 끌려가지 않도록 소령 김오랑은 8발이 장전된 콜트45 권총 한 자루로 문 앞에 쳐들어온 반란군에 맞섰습니다. 김오랑의 권총에서 7발이 발사되고 마지막 한 발은 쏘지 못한 채 반란군들의 M16에서 난사된 총탄 6발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이 사나이는 전사했습니다. 마지막 숨을 내쉬며 김오랑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내, 어머니, 아버지, 형들, 누나 베트남 전우들... 35년 짧은 생의 어떤 순간들이 스쳤을까요?” (p.4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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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조**
2024-01-28
서울의 봄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아직 못 봤습니다.
갑돌이의 글을 읽을 감회가 깊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오랑 그대는 누구인가? 나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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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군인의 길을 걷다
2024-01-24
갑돌
참 군인의 길을 걷다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김준철, 더프레스)
서울의 봄 영화를 통해 다시 조명되는 인물이 김오랑이다. 그는 12.12 사태에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지키다 사망했다. 처음에는 순직으로 됐다가 다시 전사로 바뀌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최세창 등은 참 군인의 길을 걷지 않았다. 정병주도 박정희의 쿠데타에 동의했다가 탈퇴했다. 군정을 하는 것은 군인정신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오랑은 고지식하다는 말도 있지만 자기의 상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박정희를 지키지 못한 차지철과 정병주를 지킨 김오랑은 대조적이다. 만일 박정희 밑에 김오랑이 있었다면 그를 지켰을 것이다. 정치군인들은 하나회를 중심으로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일신상의 이익을 위해 하극상을 저질렀다. 그후 출세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참군인 정병주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묘비는 백비로 남아있다. 장태완은 그의 아들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아내는 남편이 죽은 후 10층 아파트에서 투신한다. 김오랑의 부인 백영옥도 추락사한다.
김오랑의 흉상은 시민의 성금으로 김해의 초등학교에 건립돼 있다. 육사와 특전사에 흉상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 책은 유승민 의원이 추천사를 썼다. 저자는 ROTC 특전사로 김오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김오랑 추모사업회를 하며 이 책을 쓰게 된다.
더불어 12.12 사태에 전사한 정선엽 병장과 반란군 군인이지만 전사한 박윤관 상병도 명령에 따르다가 죽었기에 함께 기억해야 한다. 육사에는 강재구소령과 심일 소령이 동상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쿠데타 세력에 맞서 싸운 참군인 김오랑 동상을 세운다는 것은 참군인으로서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35세 김오랑 소령의 죽음이 그랬습니다. 운명의 그날 밤 그는 살고자 했더라면 살 수 있었습니다. 반란군에게 투항하고 협조했더라면 살아서 별도 달고 출세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력을 잃어가는 아내 백영옥의 눈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 오순도순 행복하게 천수를 누렸을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러나 김오랑은 죽음을 택했습니다. 젊은 죽음은 우리 가슴을 더 아프게 합니다. 군복을 입은 김오랑 중령의 어깨와 모자에 ‘역사의 하늘에 뜬 별’을 달아 드리고 싶습니다.
특전사령과 정병주가 반란군에게 가담한 직속 부하들의 손에 비참하게 끌려가지 않도록 소령 김오랑은 8발이 장전된 콜트45 권총 한 자루로 문 앞에 쳐들어온 반란군에 맞섰습니다. 김오랑의 권총에서 7발이 발사되고 마지막 한 발은 쏘지 못한 채 반란군들의 M16에서 난사된 총탄 6발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이 사나이는 전사했습니다. 마지막 숨을 내쉬며 김오랑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내, 어머니, 아버지, 형들, 누나 베트남 전우들... 35년 짧은 생의 어떤 순간들이 스쳤을까요?” (p.4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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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조**
2024-01-28서울의 봄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아직 못 봤습니다.
갑돌이의 글을 읽을 감회가 깊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오랑 그대는 누구인가? 나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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