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암서원은 조선의 대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의 학덕과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1590년장성읍 기산리에 창건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젔으며, 1624년 황룔면 중산동 마을에 다시 건립했으나 지형이 낮고 물난리가 나자 167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1662년 현종 임금 때 필암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평탄한 지형에서 전학후묘의 전형적인 서원 배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원이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사우 훼철령 때도 헐리지 않은 호남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2019년 7월 10일 필암서원을 포함한 9개 서원이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게유산에 등재되었다.
1975년 서원의 건물, 유물, 제향 등의 보전과 관리를 위해 건무로가 부지는 국가사적 제242호로, 서원의 노비보, 원장 선생안, 서원원적, 봉심록 등의 문서는 보물제567호로 관리되고 있다.
1999년부터 하서 선생의 문집과 유묵의 목판 700여매는 지방유형문화재 제215호와 제216호로 관리되고 있다.
확연루, 청절당, 진덕재, 숭위재, 경장각, 우동사, 장판각, 한장사, 계생비, 전사청, 고직사, 홍살문, 하마석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우동사는 하서 김인후 선생님과 고암 양자징 선생의 위폐를 모신 사당으로, 편액은 주희의 글씨를 집자했다. 장판각은 하서 선생의 문집을 비롯해 초천자문, 무이구곡, 백련초혜 등 목판 700여매를 보관한 건물이다.
청절당의 뒷모습이다.
서원의 정문인 무루 겸 유식 공간인 누각으로, 편액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세계유산 필암서원을 가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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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필암서원을 가다
2024-09-19
뱀이야기
필암서원은 조선의 대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의 학덕과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1590년장성읍 기산리에 창건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젔으며, 1624년 황룔면 중산동 마을에 다시 건립했으나 지형이 낮고 물난리가 나자 167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1662년 현종 임금 때 필암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평탄한 지형에서 전학후묘의 전형적인 서원 배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원이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사우 훼철령 때도 헐리지 않은 호남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2019년 7월 10일 필암서원을 포함한 9개 서원이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게유산에 등재되었다.
1975년 서원의 건물, 유물, 제향 등의 보전과 관리를 위해 건무로가 부지는 국가사적 제242호로, 서원의 노비보, 원장 선생안, 서원원적, 봉심록 등의 문서는 보물제567호로 관리되고 있다.
1999년부터 하서 선생의 문집과 유묵의 목판 700여매는 지방유형문화재 제215호와 제216호로 관리되고 있다.
확연루, 청절당, 진덕재, 숭위재, 경장각, 우동사, 장판각, 한장사, 계생비, 전사청, 고직사, 홍살문, 하마석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우동사는 하서 김인후 선생님과 고암 양자징 선생의 위폐를 모신 사당으로, 편액은 주희의 글씨를 집자했다. 장판각은 하서 선생의 문집을 비롯해 초천자문, 무이구곡, 백련초혜 등 목판 700여매를 보관한 건물이다.
청절당의 뒷모습이다.
서원의 정문인 무루 겸 유식 공간인 누각으로, 편액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세계유산 필암서원을 가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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