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익숙한 네모난 간판이 보인다. 간판만 바라보아도 입안에 군침이 감돌고 손바닥은 이내 땀으로 촉촉해진다. 마지막 숟가락을 떠넣을 때까지도 뜨거움을 잃지 않는 뚝배기가 떠올라서이며, 갈 때마다 정신없이 젓가락이 닿던 깍두기가 생각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식당 앞에는 대기 중인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올봄은 웬일인지 더위가 일찍 찾아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사람들도 있고, 손부채질해가며 뜨거운 햇살을 피해 보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우리는 둘, 한 명은 순대만, 다른 한 명은 고기만을 외치며 빈자리를 찾아 냉큼 앉는다. 이 식당의 메뉴는 단순하고, 특히나 점심시간에는 대부분 순댓국만을 주문하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는 주재료를 순대만, 고기만, 섞어서 세 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운 뚝배기가 내 앞에 전해졌을 때의 심장이 녹을 것 같은 열기와 아직도 불 위에 있는 듯 보글보글 뜨거운 거품을 연신 뿜어대는 순댓국이 생각나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오늘 저녁에도 먹으러 가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잠시 말을 잃는다. 밤새도록 우려낸 육수가 입안을 가득 메운다. 뜨거운 순대는 덜어내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던 짭조름한 새우젓과 매콤한 다대기로 간을 맞추거나 취향에 따라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 국밥집 특유의 몰캉한 깍두기를 곁들여 순댓국의 풍미를 고양시킨다. 인심이 좋으신 사장님은 테이블 위 자그마한 항아리에 부추를 한가득 썰어두셔서 함께 식사하는 이의 부추 사랑 크기를 알 수 있도록 하셨다. 남편은 부추 한 단 값을 더 얹어서 치러야 할 정도로 국물 반, 부추 반 순댓국을 만들어 먹는다. 종종 집에서도 생부추를 썰어놔야 하나 싶어지는데 이것이 사랑인가 생각해본다.
바닥을 벅벅 긁는 소리가 나면 내 식사가 끝났다는 신호다. 벌써 다 먹어버렸다. 지난겨울, 저녁 시간에 들러 순대전골로 식사한 적이 있는데 사장님이 끝없이 육수를 채워주셔서 원 없이 먹어본 적이 있다. ‘아! 역시 순댓국은 저녁에 가서 먹어야 제맛인 것을!’ 진짜 오늘 저녁에는 꼭 가야겠다.
계산하는 순간은 100미터 달리기 마지막 순간과도 같다. 전광석화와 같은 빛의 속도로 달려가 카드를 내밀지 않으면 나는 얻어먹고 말게 된다. 내 사랑 순댓국을 얻어먹다니. 나는 패배자와도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가끔은 우아하게 천원을 할인받으며 현금으로 계산하기도 하고, 현대인처럼 더치페이하기도 한다. 순댓국집에서의 더치페이란 정말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이따금 조금 늦은 점심시간이나 조금 늦은 저녁 시간에 들렀을 때 재료소진으로 허탈하게 돌아설 때가 있는데, 이렇게 맛있게 식사한 후 계산하고 나오는 순간에는 진정 승자가 된 기분이다. 순댓국을 절대 못 먹는다는 사람도 나와 함께 이곳에서 식사하게 된 후엔 순댓국 마니아가 되어 가족들과 일부러 식사하러 왔었고, 가족들의 칭찬을 받아서 행복했다는 후문이다. 그 후론 나와의 점심 약속은 무조건, 이 순댓국집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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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댓국 예찬
2024-01-25
하담
저 멀리 익숙한 네모난 간판이 보인다. 간판만 바라보아도 입안에 군침이 감돌고 손바닥은 이내 땀으로 촉촉해진다. 마지막 숟가락을 떠넣을 때까지도 뜨거움을 잃지 않는 뚝배기가 떠올라서이며, 갈 때마다 정신없이 젓가락이 닿던 깍두기가 생각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식당 앞에는 대기 중인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올봄은 웬일인지 더위가 일찍 찾아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사람들도 있고, 손부채질해가며 뜨거운 햇살을 피해 보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우리는 둘, 한 명은 순대만, 다른 한 명은 고기만을 외치며 빈자리를 찾아 냉큼 앉는다. 이 식당의 메뉴는 단순하고, 특히나 점심시간에는 대부분 순댓국만을 주문하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는 주재료를 순대만, 고기만, 섞어서 세 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운 뚝배기가 내 앞에 전해졌을 때의 심장이 녹을 것 같은 열기와 아직도 불 위에 있는 듯 보글보글 뜨거운 거품을 연신 뿜어대는 순댓국이 생각나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오늘 저녁에도 먹으러 가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잠시 말을 잃는다. 밤새도록 우려낸 육수가 입안을 가득 메운다. 뜨거운 순대는 덜어내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던 짭조름한 새우젓과 매콤한 다대기로 간을 맞추거나 취향에 따라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 국밥집 특유의 몰캉한 깍두기를 곁들여 순댓국의 풍미를 고양시킨다. 인심이 좋으신 사장님은 테이블 위 자그마한 항아리에 부추를 한가득 썰어두셔서 함께 식사하는 이의 부추 사랑 크기를 알 수 있도록 하셨다. 남편은 부추 한 단 값을 더 얹어서 치러야 할 정도로 국물 반, 부추 반 순댓국을 만들어 먹는다. 종종 집에서도 생부추를 썰어놔야 하나 싶어지는데 이것이 사랑인가 생각해본다.
바닥을 벅벅 긁는 소리가 나면 내 식사가 끝났다는 신호다. 벌써 다 먹어버렸다. 지난겨울, 저녁 시간에 들러 순대전골로 식사한 적이 있는데 사장님이 끝없이 육수를 채워주셔서 원 없이 먹어본 적이 있다. ‘아! 역시 순댓국은 저녁에 가서 먹어야 제맛인 것을!’ 진짜 오늘 저녁에는 꼭 가야겠다.
계산하는 순간은 100미터 달리기 마지막 순간과도 같다. 전광석화와 같은 빛의 속도로 달려가 카드를 내밀지 않으면 나는 얻어먹고 말게 된다. 내 사랑 순댓국을 얻어먹다니. 나는 패배자와도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가끔은 우아하게 천원을 할인받으며 현금으로 계산하기도 하고, 현대인처럼 더치페이하기도 한다. 순댓국집에서의 더치페이란 정말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이따금 조금 늦은 점심시간이나 조금 늦은 저녁 시간에 들렀을 때 재료소진으로 허탈하게 돌아설 때가 있는데, 이렇게 맛있게 식사한 후 계산하고 나오는 순간에는 진정 승자가 된 기분이다. 순댓국을 절대 못 먹는다는 사람도 나와 함께 이곳에서 식사하게 된 후엔 순댓국 마니아가 되어 가족들과 일부러 식사하러 왔었고, 가족들의 칭찬을 받아서 행복했다는 후문이다. 그 후론 나와의 점심 약속은 무조건, 이 순댓국집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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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도서관에 갑니다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