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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2024-01-25

하담

새끼손가락 끝에서부터 팔뚝을 타고 승천하듯 어깨를 향해 날아오르는 용문신을 한 건 비단 이 학생뿐만은 아니었다.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한땀 한땀 공들인 작품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나는 얼른 시선을 돌리곤 한다. 나를 둘러싸고 앉은 학생들과의 집단상담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공감해주는 일이 여전히 버거운 초보 상담사인 것을 들킬까봐 두려운 탓이기도 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빼곡히 잡힌 상담 일정에 여유를 불어넣으려 씨름하기를 한시간째다. 뜨겁게 내린 커피가 식어버린지 한참인데, 난 들여다 볼 새 없이 한입에 털어 넣는다. 상담사가 되면 세상의 모든 짐 진 자들을 불러 모아 내 앞에 앉혀두고 그 시름을 다 덜어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한발 물러나 다시 상담일지를 들여다본다. 내가 놓친 것을 무엇일까.

 

어스름이 가라앉는 시간. 나의 무거운 마음을 이곳에 모두 두고 퇴근이다! 외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나서는데, 복도에 구겨져 앉아 날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밥은 먹고 다니는 걸까. 지난주보다 더 야위어 보인다. 상담 약속이 있는 날도 아닌데 불쑥 찾아와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오늘도 역시 힘겨운 하루였다는 뜻. 나도 그 곁에 구겨져 앉아본다.

 

힐끔 쳐다보지도 않고 너는, 내 어깨에 기대어 울기부터 한다. 술만 마시면 거침없는 폭언과 물건을 집어 던진다는 아버지 때문일까, 교묘한 따돌림으로 괴롭힌다던 친구 때문일까, 너는 말없이 울기만 한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도 못하고 함께 그 시간 속으로 잠수해버리고야 만다. 나는 너의 무엇이 되어,

 

얼마가 지났을까. 복도 한가득 달빛이 드리우고 너는 그제야 말을 건넨다. 배고파요. 집에서 나의 저녁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지만, 오늘의 나는 너를 그냥 보낼 수가 없어 늦을 것이라는 전화를 넣고 건물 앞 식당으로 간다. 뜨끈한 순댓국 한뚝배기를 쉼 없이 밀어 넣은 너는 한없이 너만 바라보던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러곤 씨익 웃어준다.

 

그냥 배가 고팠단다. 상담센터가 있는 골목길에 접어드는데 노을 지는 하늘을 보니 그게 그렇게나 좋다던 내가 생각이 나서 왔단다. 차마 배고프다는 말을 하지 못해 서성이다가 그렇게 나의 체온을 느끼고는 눈물이 났다고, 순댓국은 정말 맛있다고 했다. 기댈 곳이 없는 학생들에게 언덕이 되어 주겠노라고 했고, 언제든 와도 된다고 했으니 오늘의 너는 나를 기억해주었으니 참 잘했고, 나는 너의 비빌 언덕이 되어 주었으니 나 역시 참 잘했다. 그런 상담사가 되어 주고 싶었던 나를 네가 완성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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