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국내 증시뿐 아니라 세계증시도 연일 폭락하고 있었을 때요. 2020년 3월에는 그 공포가 극에 달했는데, 나날이 치솟는 환율에 온갖 불안한 뉴스로 계속 보고있다가는 투매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다 싶었소.
그때 나는 그만 스마트폰에서 MTS를 지워버렸소. 불안과 고통을 참기 힘들어 차라리 피해버렸지 뭐요. 다행히 얼마 후 바닥을 잡고 반등을 해 주어 다시 MTS를 설치하고 나는 비교적 저점에서 코로나 상황에 적합하다 싶은 종목을 대량 매수하여, 금세 원금 회복을 하고, 곧 수익 전환을 할 수 있었소. 그때, 난생처음 신용이라는걸 써 보았는데 수명을 빠르게 단축하는 매우 확실한 방법이오.
내 주식의 시작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모든 주식이 이렇다 할 반등 없이 끝없이 추락하고, 2009년쯤 바닥을 잡고 있을 때였소. 시장이 폭락하고 모두가 주식을 팔고 떠나는 그때, 주식을 시작하면 높은 확률로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지.
주식이라는 것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심리 게임이라 시장이 공포심에 휩싸일 때는 기업의 가치가 높은 저평가주를 매수할 절호의 기회인데, 어느새 나는 도박을 하고 있더란 말이오.
당시 신종플루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을 때, 주식시장은 또 플루테마를 타고 온갖 제약, 바이오 종목들이 롤러코스터가 되어있었소. 나는 그 종목들에 완전히 중독되어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몇 달 만에 투자금의 90%를 날리고 말았소. 적은 투자금으로 빠르게 수익을 얻겠다는 욕심에 마음만 급했던 나를 탓하며 한동안 주식시장을 떠났었소. 실은 그때, 주식이라면 꼴도 보기 싫었소.
그때 주식을 떠올리면 잔인하게 나를 버리고 떠난 연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사랑노래에 '사랑' 대신 '주식'이라는 단어를 넣어 부르면 내 마음이 퍽 잘 설명이 되었었소. 이승철의 '사랑 참 어렵다'라는 곡이 특히 그랬소.
「내 맘을 다 줘도 왜 항상 떠나가는지
다시 주식할 수 없을 것 같아…
내 멍든 가슴은 온통 너로 가득 차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주식 참 어렵다, 어렵다, 너무 힘들다
주식 참 어렵다, 어렵다, 너무 아프다
내 모든 걸 다 주어도 부족한 주식 참 어렵다」
어떻소? 딱 맞아떨어지지 않소?
그래도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니 무뎌졌는지, 다시 주식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소. 2018년 미·중 무역전쟁으로 시장은 또 공포에 휩싸이고 가치 있는 종목들까지 모조리 바겐세일에 들어갔었오. 그때도 나는 어리석게도 지인이 정보라고 준 종목에 현혹되어, 또 기회를 잃었지만, 처음처럼 큰 손실을 본 것은 아니었소.
그때부터 꽤 열정적으로 강의를 들으며 투자 공부를 시작했소. 몇 년간 조금씩 공부하는 동안, 큰 수익도 손실도 보지는 않았는데, 돈만 생기면 예치금으로 넣은 탓에 투자금이 점점 늘어났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전 재산이 들어가 있더란 말이오. 그때 코로나 팬더믹을 그대로 맞았더랬소.
공포스러울 때 주식을 시작한 적은 있었지만, 온몸으로 그 하락을 맞은 적은 처음이오. 2020년 3월 중순까지 한 달 내내 끝도 없이 하락하는 두려움과 고통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소.
길을 걷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아도 ‘저 사람은 지금 주식이 한주도 없겠지? 참으로 부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지수상 정확히 최하단을 찍던 날 아침, 주식 이야기를 몇 번 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소.
"주식 더 이상 하지 마라! 요즘 분위기 살벌하더라."
이미 전 재산이 들어가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니, 지금 무슨 소린가? 이렇게 주식이 쌀 때는 입던 빤스라도 팔아서 물타기를 해야 할 판이다."라며 있는 대로 허풍을 치고는 전화를 끊고서 한숨을 쉬었더랬소.
시장은 꽤 오래 공포를 주다가도 갑자기 돌변하여 밝은 낯을 보이는 퍽 변덕스러운 놈이오.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피가 낭자할 때의 공포를 이겨내고 묵묵히 가치주를 담을 수 있는 배짱 정도는 챙겨야 하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
한참 폭락의 고통을 겪던 2020년 3월 말, 나는 무심코 거울을 보다 깜짝 놀랐소. 까칠한 낯이 거무죽죽하게 썩은 빛이었고, 한 달 새 놀랄 만큼 늙어있었소.
지금도 나는 여전히 주식 투자를 하고 있고, 돈을 사랑하오.
또 몇 번의 공포가 오겠지마는, 나는 기꺼이 맞을 준비가 되어있소.
공포야, 다시 오너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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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꾸나
2024-02-11
뚱고
돈이 삭제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소?
코로나로 국내 증시뿐 아니라 세계증시도 연일 폭락하고 있었을 때요. 2020년 3월에는 그 공포가 극에 달했는데, 나날이 치솟는 환율에 온갖 불안한 뉴스로 계속 보고있다가는 투매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다 싶었소.
그때 나는 그만 스마트폰에서 MTS를 지워버렸소. 불안과 고통을 참기 힘들어 차라리 피해버렸지 뭐요. 다행히 얼마 후 바닥을 잡고 반등을 해 주어 다시 MTS를 설치하고 나는 비교적 저점에서 코로나 상황에 적합하다 싶은 종목을 대량 매수하여, 금세 원금 회복을 하고, 곧 수익 전환을 할 수 있었소. 그때, 난생처음 신용이라는걸 써 보았는데 수명을 빠르게 단축하는 매우 확실한 방법이오.
내 주식의 시작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모든 주식이 이렇다 할 반등 없이 끝없이 추락하고, 2009년쯤 바닥을 잡고 있을 때였소. 시장이 폭락하고 모두가 주식을 팔고 떠나는 그때, 주식을 시작하면 높은 확률로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지.
주식이라는 것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심리 게임이라 시장이 공포심에 휩싸일 때는 기업의 가치가 높은 저평가주를 매수할 절호의 기회인데, 어느새 나는 도박을 하고 있더란 말이오.
당시 신종플루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을 때, 주식시장은 또 플루테마를 타고 온갖 제약, 바이오 종목들이 롤러코스터가 되어있었소. 나는 그 종목들에 완전히 중독되어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몇 달 만에 투자금의 90%를 날리고 말았소. 적은 투자금으로 빠르게 수익을 얻겠다는 욕심에 마음만 급했던 나를 탓하며 한동안 주식시장을 떠났었소. 실은 그때, 주식이라면 꼴도 보기 싫었소.
그때 주식을 떠올리면 잔인하게 나를 버리고 떠난 연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사랑노래에 '사랑' 대신 '주식'이라는 단어를 넣어 부르면 내 마음이 퍽 잘 설명이 되었었소. 이승철의 '사랑 참 어렵다'라는 곡이 특히 그랬소.
「내 맘을 다 줘도 왜 항상 떠나가는지 다시 주식할 수 없을 것 같아… 내 멍든 가슴은 온통 너로 가득 차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주식 참 어렵다, 어렵다, 너무 힘들다 주식 참 어렵다, 어렵다, 너무 아프다 내 모든 걸 다 주어도 부족한 주식 참 어렵다」
어떻소? 딱 맞아떨어지지 않소?
그래도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니 무뎌졌는지, 다시 주식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소. 2018년 미·중 무역전쟁으로 시장은 또 공포에 휩싸이고 가치 있는 종목들까지 모조리 바겐세일에 들어갔었오. 그때도 나는 어리석게도 지인이 정보라고 준 종목에 현혹되어, 또 기회를 잃었지만, 처음처럼 큰 손실을 본 것은 아니었소.
그때부터 꽤 열정적으로 강의를 들으며 투자 공부를 시작했소. 몇 년간 조금씩 공부하는 동안, 큰 수익도 손실도 보지는 않았는데, 돈만 생기면 예치금으로 넣은 탓에 투자금이 점점 늘어났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전 재산이 들어가 있더란 말이오. 그때 코로나 팬더믹을 그대로 맞았더랬소.
공포스러울 때 주식을 시작한 적은 있었지만, 온몸으로 그 하락을 맞은 적은 처음이오. 2020년 3월 중순까지 한 달 내내 끝도 없이 하락하는 두려움과 고통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소.
길을 걷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아도 ‘저 사람은 지금 주식이 한주도 없겠지? 참으로 부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지수상 정확히 최하단을 찍던 날 아침, 주식 이야기를 몇 번 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소. "주식 더 이상 하지 마라! 요즘 분위기 살벌하더라." 이미 전 재산이 들어가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니, 지금 무슨 소린가? 이렇게 주식이 쌀 때는 입던 빤스라도 팔아서 물타기를 해야 할 판이다."라며 있는 대로 허풍을 치고는 전화를 끊고서 한숨을 쉬었더랬소.
시장은 꽤 오래 공포를 주다가도 갑자기 돌변하여 밝은 낯을 보이는 퍽 변덕스러운 놈이오.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피가 낭자할 때의 공포를 이겨내고 묵묵히 가치주를 담을 수 있는 배짱 정도는 챙겨야 하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
한참 폭락의 고통을 겪던 2020년 3월 말, 나는 무심코 거울을 보다 깜짝 놀랐소. 까칠한 낯이 거무죽죽하게 썩은 빛이었고, 한 달 새 놀랄 만큼 늙어있었소.
지금도 나는 여전히 주식 투자를 하고 있고, 돈을 사랑하오. 또 몇 번의 공포가 오겠지마는, 나는 기꺼이 맞을 준비가 되어있소.
공포야, 다시 오너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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