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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밥벌이

2024-02-23

뚱고

어떤 밥벌이

나는 이곳에서 7개월째 밥벌이 중이다. 내 몫은 물론이고 동료들의 몇 끼니 정도는 거뜬히 해결해 줄 수 있다. 내가 맛만 보고 무성의하게 던져준 음식이라도 그들은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 바쁘다.

 

내 밥벌이의 노하우는 마음 약한 여성과 어린이를 공략하는 것! 방법은 간단하다. 늘 최선을 다해 털 관리를 한다. 내 오돌토돌한 혀로 쉴 새 없이 전신을 닦고 최대한 청결하고 정갈하게 나를 단장한다.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인 오후 한 시 이후, 102동과 103동 사이에 테니스장이 있는데 그 앞 벤치가 내 자리이다. 안면근육을 이완시켜 순진하고 연약한 표정으로 앞다리를 꼬고 앉아 볕을 쬐고 있으면, 곧 길집사들이 먹을 것을 갖고 다가온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천천히 일어나 가슴을 쫙 펴고 턱은 당긴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 그들을 맞이한다. 가끔은 너무 깊이 다가가는 것을 꺼리는 집사도 있기에, 나는 가볍게 반기는 기색만 하며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길집사의 성향에 따라 강아지처럼 무릎 위에 올라갈 때도 있고, 허락을 의미하는 포즈를 취할 때도 있다. 대부분은 밥벌이를 위한 액션일 뿐이지만, 가끔은 직업정신이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이 가는 이도 있다. 하지만 길냥이 주제에 집사를 가렸다가는 밥을 굶기 십상이며, 함부로 마음을 주었다가 크게 상처받을 수도 있다.

 

오늘도 그곳에서 가장 애정하는 참치캔과 츄르까지 잡쉈다. 이런 날이면 나는 발라당 뒤집어 한껏 배를 보여주며 내 몸을 통째로 길집사에게 맡겨 밥값을 지불한다. 아무리 길냥이지만 낯선 길집사에게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하고 나면 현타가 오기 마련이다.

 

세상에 만만한 밥벌이가 어디 있겠나….

 

이럴 땐 회복이 될 때까지 지하 보일러실에 짱박혀 낮잠이나 한숨 자다 심심해지면 통통한 쥐들이나 쫓는 게 제일이다. 이러한 사정을 알 리 없는 다른 길냥이들은 '날먹 인생'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아름다운 몸매를 위해 꾸준한 운동으로 바디라인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포만감이 들면 바로 먹는 것을 멈추는 프로다운 면모도 갖추어야 한다. 자기 관리를 게을리하다 한순간 나락으로 가는 길냥이들을 제법 보았다. 길냥이의 세계에서도 상위 0.1%만이 호사를 누리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름의 고충이 있지만 이러한 나의 밥벌이 방식이 꽤 고등하다고 자부한다. 음식쓰레기 통이나 뒤지다가 아파트 관리인에게 혼쭐이 나는 고단한 길냥이들을 볼 때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글이 길냥이들의 고달픈 노숙 생활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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